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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00년대 초까지 개성에서 약 20㎞ 떨어진 풍덕군 부소산 기슭에 있는 절터에는 특이한 탑 한 기가 서있었습니다. 아(亞)자형 3단 기단을 빼면 10층이어서 경천사 10층 석탑이란 이름이 붙었고, 높이가 13m나 되는 대형탑이었습니다. 옥개석 밑에 새겨진 명문(발원문) 등에 이 탑의 조성자는 1348년(충목왕 4년) 원나라에 빌붙어 권세를 누린 강융(?~1349)과 고용보(?~1362) 그리고 원나라 승상 탈탈(1314~1355) 등입니다. 이들은 고려왕실이 아니라 순전히 원나라 황제(혜종·재위 1330~1370)와 황후(당시 고려 출신인 기씨), 황태자 등의 만수무강을 빌기위해 이 탑을 조성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1902년 무렵의 경천사탑 10층석탑. 왼쪽 사진은 겅천사탑 강탈사건을 특종보도한 <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7일자. 황태자(순종)의 가례에 특사로 파견된 일본의 궁내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가 일본 무뢰배를 동원해서 통째로 뜯어갔다.
오른쪽 사진은 1902년 무렵의 경천사탑 10층석탑. 왼쪽 사진은 겅천사탑 강탈사건을 특종보도한 <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7일자. 황태자(순종)의 가례에 특사로 파견된 일본의 궁내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가 일본 무뢰배를 동원해서 통째로 뜯어갔다.


■일본 장관이 강탈해간 경천사탑

그런 탓일까요. 탑의 조성에 원나라 기술자들을 대거 동원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보기드문 대리석재를 사용했고, 원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라마교 형식으로 쌓았습니다. 탑에는 동물과 꽃, 현장법사와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의 내용, 나한상이 조각돼있고, 각종 불회도와 여래상, 호법신들로 채워져 있습니다.파워볼엔트리

그런데 1907년 정말 기가 막힌 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황태자(순종·재위 1907~1910)의 혼례식에 사절단으로 참석한 일본 정부의 궁내부 장관(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1843~1939)이 골동품상을 통해 일본 무뢰배들을 동원해서 경천사 10층 석탑을 무단해체해서 일본으로 반출한 것입니다.

경천사탑을 강탈해간 일본의 궁내부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
경천사탑을 강탈해간 일본의 궁내부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야키.


다나카라는 작자는 대한제국의 고종(재위 1863~1907)이 ‘조선과 일본의 우의친선을 위해 기증하겠다’고 허락했다고 강변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일본 신문조차 “친교 우위 차원에서 위해 탑을 주었다면 정부 차원의 기증식도 열고, 기증문서도 주고 받았을 것인데 그런 절차가 없지 않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새빨간 거짓이었죠. 하룻밤 사이에 탑을 140조각으로 뜯어 달구지 10여 대에 실어 날랐다는 거 아닙니까. 주민들은 물론이고, 풍덕군수 등도 나와 말렸지만 일본인들의 서슬퍼런 총칼 위협에 발만 동동 굴렸답니다. 눈뜨고 코 베어간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집중보도하며 “다나카가 고종의 허락을 얻었다는 것은 꾸며낸 말”이라고 폭로한 1907년 4월13일 <대한매일신보>. 오른쪽 사진은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으로 일제의 침략야욕을 집요하게 보도한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집중보도하며 “다나카가 고종의 허락을 얻었다는 것은 꾸며낸 말”이라고 폭로한 1907년 4월13일 <대한매일신보>. 오른쪽 사진은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으로 일제의 침략야욕을 집요하게 보도한 어니스트 베델(한국명 배설).


■‘140조각으로 해체해 달구지 10대로’

경천사탑 약탈 사건은 바람 앞 등불 같은 대한제국의 운명을 상징해주는 사건이었죠. 눈 앞에서 멀쩡히 서있는 탑을 빼앗기고도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분연히 일어선 외국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들이 바로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한국명 배설·1872~1909)과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난지 한 달 여 만인 3월7일 베델이 발행인을 맡은 <대한매일신보>가 이 천인공노할 뉴스를 특종 보도합니다. 베델은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뉴스>의 발행인도 겸했습니다. 1면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본의 특사 다나카 자작(궁내대신)의 흉계로 무기를 가진 일본인들이 경천사탑을 급습하여 탑을 해체한 뒤 실어갔다고 한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6월4일과 5일자. 4일자에서는 일본의 <이륙신문>을 인용, “이 약탈사건이 미국 등 해외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만약 다나카 대신이 탑을 가져온 절차에 잘못이 있다면 다나카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5일자는 “석탑을 빨리 되돌려보내 잘못을 사죄하라…일본으로선 역사의 무한한 수치가 될 것이니 일본 당국자는 반성하라”고 보도했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6월4일과 5일자. 4일자에서는 일본의 <이륙신문>을 인용, “이 약탈사건이 미국 등 해외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만약 다나카 대신이 탑을 가져온 절차에 잘못이 있다면 다나카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5일자는 “석탑을 빨리 되돌려보내 잘못을 사죄하라…일본으로선 역사의 무한한 수치가 될 것이니 일본 당국자는 반성하라”고 보도했다.


베델은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1904년) 영국의 <데일리 크로니클> 통신원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우국지사인 양기탁(총무·1871~1938)·박은식(주필·1859~1925) 등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습니다(1904년). 일제 침략에 맞서 위기일로의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신문 창간 및 발행에 문자 그대로 벽안의 외국인이 앞장 선 것입니다. 항일운동의 선봉에 서있던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당시 무려 1만3000부를 발행했는데, 이것은 당시 모든 신문 총발행 부수보다 많았답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언론이었던 거죠.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두 주역인 베델과 양기탁(사진 오른쪽). <데일리미러> 1908년 8월8일자에 실렸다.|배설(베델)선생 기념 사업회 제공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두 주역인 베델과 양기탁(사진 오른쪽). <데일리미러> 1908년 8월8일자에 실렸다.|배설(베델)선생 기념 사업회 제공


<대한매일신보>는 정말 집요했습니다. 6월까지 3개월 동안 경천사탑 약탈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첫 기사인 3월7일자는 “주민 20여 명이 일제히 달려들어 탑재석을 실어나르는 현장을 막아섰지만 일본인 40~50명이 총검을 들고 시위하며 달구지를 좌우에서 호송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을 만만하게 본 다나카의 만행과 모욕에 능히 항거할 것”이라고 분개했습니다.

추적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고종 황제의 허락을 얻었다는 것은 꾸며낸 말이다. 황제가 600년 된 탑을 가져가라고 허락했을 리 없다.”(4월13일) “석탑을 빨리 되돌려보내 잘못을 사죄하라…일본으로선 역사의 무한한 수치가 될 것이니 일본 당국자는 반성하라”(6월5일)는 등 끈질기에 파고 들었습니다.

필봉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괴롭혔던 영국인 베델은 일제의 탄압 때문에 옥고를 치렀다. 그 후유증으로 만 37살의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1909년 5월5일 수많은 인파가 양화진 묘소까지 따라갔다(오른쪽 사진). 베델의 관에는 태극기를 덮었다(왼쪽 사진). |배설(베델) 선생기념사업회 제공
필봉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괴롭혔던 영국인 베델은 일제의 탄압 때문에 옥고를 치렀다. 그 후유증으로 만 37살의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1909년 5월5일 수많은 인파가 양화진 묘소까지 따라갔다(오른쪽 사진). 베델의 관에는 태극기를 덮었다(왼쪽 사진). |배설(베델) 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일본신문도 비판 논조로 돌아서

영향력있는 언론이 앞장서자 일본 신문들조차 흔들렸습니다. 일제통감부가 발행하는 영자지 <서울프레스>조차 <대한매일신보>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다나카를 비판하는 일도 벌어졌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서울프레스>가 경쟁지인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받아쓴 것은 처음이며. 경천사탑 약탈과 관련해서 <서울프레스>의 논조는 자못 솔직했다”고 소개했답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6월4일자에서 일본의 ‘이륙신문’을 인용했는데, <이륙신문>은 “이 약탈사건이 미국 등 해외에서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만약 다나카 대신이 탑을 가져온 절차에 잘못이 있다면 다나카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답니다.

<이륙신문>은 심지어 “절차가 잘못됐다면 다나카가 책임을 지어 양국 황실에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1907년 6월9일자. 경천사10층석탑의 강탈사실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이 임진왜란 때부터 원각사 10층 석탑과 이 경천사 10층 석탑을 뜯어가려고 획책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임진왜란 때 두 탑에 눈독을 들인 자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였다. 400년 뒤 다나카는 서울 한복판에 있던 원각사 탑은 차마 가져가지 못하고 경천사탑만 강탈했다.(출처:정진석의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영국 언론인 배설>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역사공간, 2013에서)
<워싱턴포스트> 1907년 6월9일자. 경천사10층석탑의 강탈사실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이 임진왜란 때부터 원각사 10층 석탑과 이 경천사 10층 석탑을 뜯어가려고 획책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임진왜란 때 두 탑에 눈독을 들인 자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였다. 400년 뒤 다나카는 서울 한복판에 있던 원각사 탑은 차마 가져가지 못하고 경천사탑만 강탈했다.(출처:정진석의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영국 언론인 배설>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역사공간, 2013에서)


■“난 죽어도 신문은 살아남아 한국동포를 구하라”

물론 <대한매일신보>를 베델 혼자 만든 것은 아닙니다. 양기탁·박은식·신채호(1880~1936) 선생 등 내로라하는 우국지사들이 힘을 합해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인인 베델이 앞장서서 방패막이를 자처하지 않았다면 경천사탑 약탈사건은 일제의 방해와 협박 때문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흐지부지 되었을 것입니다.

초대 한국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가 그랬다죠.

“이 이토의 백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이 한국인을 감통(느낌이나 생각이 통함)시키는 힘이 큰데, 그중 일개 외국인의 <대한매일신보>는 일본 시책을 반대하고 한국인을 선동함이 계속되니 통감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랬으니 통감부는 베델과 <대한매일신보>를 탄압했고, 결국 베델은 치안방해선동죄를 뒤집어쓰고 옥고를 치릅니다. 그러면서 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졌고, 급기야 1909년 5월 만 37살의 나이로 타계하고 맙니다.

베델의 유언은 “내는 죽지만 <대한매일신보>는 영영토록 살아남아 동포들을 구하라”는 것이었답니다.

일본의 <이륙신문>을 전재한 <대한매일신보>(오른쪽 사진). 미국을 방문중인 구로키 대장(왼쪽 사진)이 경천사탑 약탈사건의 전모를 묻는 미국기자들의 취재요청을 모두 거절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일본의 <이륙신문>을 전재한 <대한매일신보>(오른쪽 사진). 미국을 방문중인 구로키 대장(왼쪽 사진)이 경천사탑 약탈사건의 전모를 묻는 미국기자들의 취재요청을 모두 거절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강탈사건을 현장취재한 외국인

이 강탈사건을 해외에 널리 알려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시킨 외국인이 한 분 더 계십니다. 바로 호머 헐버트 박사(1863~1949)였습니다. 헐버트는 1886년 왕립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초빙된 이후 일제 침략에 맞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 바친 인물입니다. 특히 130년 전인 1890년 무렵부터 한글의 우수성과 한국문화의 독창성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린 분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헐버트라는 분이 경천사탑 강탈사건의 고발에 발벗고 나섰답니다. 서울에서 이 천인공노할 소식을 전해들은 헐버트는 현장으로 달려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헐버트는 자신의 취재내용을 베델이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에 제보했습니다. <대한매일신보>의 특종보도는 헐버트의 제보에서 비롯된 거죠. 헐버트는 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밀사들의 활약상을 보도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공식 신문(<쿠리어 드 라 콩페랑스>). 헐버트(오른쪽 사진)는 평화클럽 연설에서 일본인의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한국인 밀사들의 활약상을 보도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공식 신문(<쿠리어 드 라 콩페랑스>). 헐버트(오른쪽 사진)는 평화클럽 연설에서 일본인의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해외언론에 ‘강탈사건’ 폭로

자신이 발행하는 <코리아 리뷰>는 물론이고, 일본 고베(神戶)의 <저팬 크로니클> 1907년 4월 4일자에 경천사탑 탈취 사실을 기고했습니다. 일부 일본신문이 “불법 약탈했다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이라는 반박기사를 내자 헐버트는 현장 사진과 상황을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까지도 무척 곤혹스러워 했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다나카의 석탑탈취사건을 결국 뭉개고 말았습니다. 헐버트는 국제여론에 호소하기로 합니다.

뉴욕포스트 등에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기고하여 미국내 여론을 환기시켰습니다. 실제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일본 육군대장인 구로키 다메모토(黑木爲楨·1844~1923)에게 미국 기사들이 몰려들었고 곤란해진 구로키가 논평을 거부했다는 기사가 다름아닌 일본신문(<이륙신문>)에 실렸습니다.

헐버트는 이 문제를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까지 끌고 갔습니다. 고종의 밀사로 파견된 헐버트는 1907년 7월 헤이그 평화클럽에서 열린 연설에서 일본의 야만성을 폭로하면서 바로 경천사탑 약탈사건을 거론했습니다. 당시 만국평화회의를 보도한 공식 신문(<쿠리에 드 라 콩페랑스>)에 “경천사 10층석탑 사건은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파괴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헐버트는 일본 고베에서 발행되는 ‘저팬 크로니클’ 1907년 4월4일자에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폭로하는 사실을 기고했다.|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헐버트는 일본 고베에서 발행되는 ‘저팬 크로니클’ 1907년 4월4일자에 경천사탑 강탈사건을 폭로하는 사실을 기고했다.|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공


■포장도 뜯지않은채 반환된 탑

이 탑은 어찌되었을까요. 결국 11년 뒤인 1918년 11월15일 약탈한 상태 그대로, 포장도 뜯지 않은채 반환되었답니다. 국내외의 거센 비판여론에 힘입은 마지막 통감 및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1852~1919)와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1850~1924)가 끝까지 버티던 다나카를 궁지에 몰아넣어 결국 반환하도록 했답니다. 당시엔 조선이 영영 일본의 식민지로 남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2005년 재복원 직전의 탑 부재. 경천사탑은 강탈 11년 만인 1918년 되돌아왔다. 그러나 140개로 산산조각난 탑부재는 극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왼쪽 사진). 탑은 두차례 복원 끝에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전시되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2005년 재복원 직전의 탑 부재. 경천사탑은 강탈 11년 만인 1918년 되돌아왔다. 그러나 140개로 산산조각난 탑부재는 극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왼쪽 사진). 탑은 두차례 복원 끝에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전시되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러니 조선총독으로서는 ‘조선문화재’가 자기가 다스리는 ‘조선땅’에 있는게 좋았겠죠.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서도 조선에 시혜를 베풀 필요가 있었고요. 그래서 비등한 국내외 여론을 등에 업고 반환을 추진한거죠.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도착한 탑재의 포장을 뜯어본 사람들은 그 참담한 몰골에 고개를 돌려야 했답니다. 해체된 탑부재는 당대의 기술로는 복원조립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가 심했답니다.

경천사 10층석탑의 기단부 부분. 현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등장하는 <서유기>의 내용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천사 10층석탑의 기단부 부분. 현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등장하는 <서유기>의 내용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40년동안 방치한 뒤 두차례에 걸친 수리복원 끝에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국보(86호)의 대접을 받고 서있습니다. 만약 베델과 헐버트가 약탈사건을 끈질기게 고발하여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키지 않았다면 경천사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나카 개인의 정원을 지키는 신세로 전락했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백주에 총검을 들이대고 높이 13m나 되는 으리으리한 탑을 뜯어가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그 시절이 너무도 가슴 아픕니다.

경향신문 선임 기자 lkh@kyunghyang.com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대전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대전검찰청에서 지역 검사들과 간담회를 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여권과 대립하기 시작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선주자로 몸집을 키워 가는 모습을 여권은 경계해 왔다. 하지만 윤 총장이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야권의 대선주자로 급상승하자 오히려 여권 내부에서는 “한번 지켜보자”는 여론이 감지된다. 윤 총장에 대한 주목도가 커질수록, 다른 야권 대선주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기지 않아, 여권에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동행복권파워볼


대선 레이스 역동성 주목하는 與, 야권이 오히려 ‘윤석열 블랙홀’에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파른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는 윤 총장은 현직 검찰총장이지만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서 있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11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는 27.7%를 얻어 이낙연 민주당 대표(22.2%), 이재명 경기지사(18.4%)와 3강 구도를 형성했다. 13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표(19%), 이 지사(19%)에 이어 윤 총장(11%)이 이름을 올렸지만, 야권 대선주자와 비교하면 가장 선두다.

‘윤석열 신드롬’으로 불릴 정도지만 민주당은 ‘우려’ 보다 표정 관리를 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소속도 아닌 윤 총장이 자연스럽게 야권의 대선주자로 분류돼 다른 야당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총장의 뒤를 잇는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을 보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3%), 홍준표 무소속 의원(1%) 모두 미미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1% 지지율도 얻지 못했을 정도로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15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대선 전략의 기본은 다양한 주자들이 경선에 참여해 유권자에게 ‘역동적 정당’ ‘인재가 풍부한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라며 “야권에서는 윤 총장이 등장해 다른 주자들을 잡아먹고 있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실제 민주당은 대선주자 인재풀을 최대한 넓히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투톱’ 구도가 굳어진 듯 하지만, 김경수 경남지사 항소심 판결 이후 오히려 정세균 국무총리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 제3주자의 등장 필요성이 무성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야권의 의지와 상관없이 윤 총장이 독주하는 상황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윤석열(왼쪽) 검찰총장이 지난달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마친 뒤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왼쪽) 검찰총장이 지난달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마친 뒤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드롬’ 대선주자 성공사례 없었던 한국 정치

설령 윤 총장이 야권 후보로 대선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전례에 비춰 ‘상대하기 편한 후보’가 될 것이라는 판단도 여권 내부에 깔려 있다. 1987년 민주화체제 등장 이후 소위 ‘신드롬’ 현상을 불러온 대선 주자들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고건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대표적이다. 신드롬을 불러온 인사들은 대선 직전 주목을 받으면서 ‘대망론’을 실현시키는 듯 했지만, 결국 중도사퇴 하는 등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전문가들 역시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윤 총장이 교육ㆍ외교ㆍ국방ㆍ북핵 등 현안을 다룰 역량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을 유보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역시 “문재인 정권과의 갈등 속에서 반사적으로 윤 총장 지지율이 올랐을 뿐”이라며 “대선주자로 볼 만큼 의미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거리를 뒀다.

김종인(가운데) 비대위원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종인(가운데) 비대위원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윤 총장은 야당이 아닌 정부여당 사람”이라는 김종인 위원장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런 우려를 의식하는 분위기다. 최근 윤 총장을 “야당이 아닌 정부·여당 사람”이라고 했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도 “우리 당내에서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느 정도 의사를 표명한 사람은 세 사람밖에 없다”며 “유승민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라고 이레적으로 특정 인사들의 실명을 언급했다. 실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1년 4개월 앞으로 다가 온 차기 대선에서 내년 7월까지 임기인 윤 총장이 가져올 변수를 국민의힘이 지켜보기에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대선 후보의 권력의지를 확인하는 일부터 정치적 검증대에 서는 일까지 고려하면 차기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며 “이미 국민의힘은 반기문과 황교안 사례에 대한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tvN ‘여신강림’ 방송, 원작자 야옹이
“먼 훗날 막장 스릴러 그리고 싶어”

웹툰 작가 야옹이
웹툰 작가 야옹이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여학생이 화장을 통해 한순간 ‘여신’으로 등극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와 자존감 찾기 과정. 네이버 웹툰(매주 화요일) ‘여신강림’의 개요다. 2018년 4월 시작한 이 웹툰은 데뷔 3주 만에 1위에 오른 이래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는 히트작이다.파워볼사이트

예쁜 그림체와 화장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는 현실적 ‘미운오리새끼’ 구성, 매력적인 인물 캐릭터 등이 어우러지면서 10~20대층에서 인기가 높다. tvN에서 동명의 수목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데뷔작으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웹툰 작가 야옹이(본명 김나영·29·사진)는 작품 속 여주인공(주경)과 비슷한 외모가 공개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음 달 9일 첫 방송을 앞둔 가운데 작가 야옹이를 서면으로 만났다.

Q : 여신강림 주인공 주경이가 작가 경험에서 만든 페르소나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다.
A : “나의 경험이라기보다는 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이 반영된 부분은 형제 관계다. (극 중 주경은 언니와 남동생을 두고 있다.)”

Q : 이 작품은 화장을 통한 이미지 변신을 다뤘다. 일각에선 이를 ‘속임수’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A : “메이크업은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얼굴이라는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려내는 하나의 손기술이다. 메이크업 전후 차이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 아닐까.”

Q : 화장과 관련해 본인이 경험한 에피소드가 있나.
A : “언니와 마트에 갔는데, 화장한 나를 본 계산원 아주머니가 언니에게 ‘여동생이 둘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굉장히 충격적이면서도 재미있었다.”

‘여신강림’ 작가 야옹이가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보낸 인사.
‘여신강림’ 작가 야옹이가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보낸 인사.

Q : 경쟁률이 치열한 네이버 웹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해외에서도 인기다. 비결이 뭘까.
A : “노력이 좋게 평가받는 것 같아 감사하다. 매주 매주 정말로 죽을 힘을 다해 원고를 완성하고 있다. 일주일 중 반나절 정도 휴식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여기에 투입한다. 해외에서의 인기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라 무척 기쁜데, 방탄소년단의 인기에 숟가락을 올린 기분이기도 하다.”

Q : 피팅모델 출신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원래 웹툰 작가를 꿈꿨나.
A : “피팅모델은 아르바이트로 했고, 유년 시절 연필을 쥐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오직 그림만 그리며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원래 꿈은 콘셉트 아트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는데, 디자인적 재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껴 방향을 틀어 웹툰 작가를 준비했다.”

Q : 웹툰 작가의 하루 일상이 궁금하다. 어떻게 보내고 있나.
A : “오후 1시 작업실로 출근해 어시스턴트 친구들과 작업을 시작한다. 빠르면 오후 10시에 마치고, 늦으면 새벽 5~6시쯤 퇴근한다. 이렇게 일주일이 반복된다. 그나마 작업을 일찍 마치는 날엔 다음날 조금 일찍 일어나 병원 등에 들른다. 손목 등에 큰 무리가 가는 작업이다. 항상 마감에 쫓기며 살지만 적성에 맞고 매우 즐거운 일을 하게 돼 행복하다.”

Q :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
A : “김준구 네이버 대표가 웹툰 작가들의 수입 규모를 밝힌 적이 있는데, 그중에 상위 클래스에 속하는 정도다. (김준구 대표는 지난해 "네이버 웹툰 작가의 평균 연 수익은 3억1000만원이고, TOP 20 작가 평균 연 수익은 17억5000만원”이라고 밝혔다.)”

Q : 차기작은.
A : “소재는 공개하기 어렵지만 학원물이다. 먼 훗날엔 정말 막장 스릴러를 그리는 것이 꿈이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코트라 공동 유턴기업 4개사 서면인터뷰(종합)]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 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부품기업 국내복귀 투자 양해각서 체결식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산업통상자원부, 울산시의 투자 협약과 코트라, 부품기업의 투자지원 협약이다. (청와대 제공) 2019.8.28/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울산 이화산업단지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친환경 차 부품 울산공장 기공식에서 부품기업 국내복귀 투자 양해각서 체결식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산업통상자원부, 울산시의 투자 협약과 코트라, 부품기업의 투자지원 협약이다. (청와대 제공) 2019.8.28/뉴스1

#”중국 공장의 인건비가 크게 오른 데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제조 경쟁력이 이전보다 떨어졌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를 구축하는게 되려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유턴기업 R사)

#”국내복귀를 하는 과정에서 현지 생산설비 처분에 따른 손실을 메꾸고도 남을 과감한 정책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유턴기업 C사)

시장을 찾아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6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유턴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 한국 복귀를 선언한 기업수와 투자액이 2배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원이 지방 위주로 이뤄지고, 보조금 지원 등 혜택지원 기준도 제한된다.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유턴을 늘리기 위해서는 제도와 규제를 더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5일 머니투데이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움을 받아 지난 6월 이후 국내로 복귀한 4개 중소기업과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4개사 모두 중소기업이다. 상대국가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업종과 회사명은 익명으로 진행했다.━인건비 고공행진, 스마트 팩토리 열고 고국으로

유턴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게 된 결정적 요인은 현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원가경쟁력 하락한 것이다. 유턴기업 C사는 “중국 내 인건비 상승의 폭이 너무 커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확보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K사도 “원가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데다 현지 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규제 등으로 기업 경영환경이 악화된 것도 국내 복귀를 결정한 이유”라고 밝혔다.

복귀 후 국내에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하고 있는 R사도 인건비가 결정적 이유라고 밝혔다. R사 관계자는 “원가경쟁력 확보에 유리한 스마트팩토리를 국내에 구축해 생산물량을 늘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M사는 “(공장이전을 위해)베트남, 인도 등 해외시장을 조사해 봤지만 경영에 어려움이 예상돼 국내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국내복귀 결정에 영향을 미친 정부 정책으로는 유턴 보조금을 꼽았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2.0 전략’을 통해 현행 100억원 한도의 지원금을 수도권은 최대 150억원, 비수도권은 300억원으로 상향했다. K사는 “정부의 투자 보조금 지원 정책 등 신규 투자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고 밝혔다. C사도 “정부보조금이 유턴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국내복귀의 장점에 대해선 국내 우수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K사는 “국내 복귀에 따라 이미 국내에 구축돼 있는 인프라를 활용한 시너지를 누릴 수 있다”며 “물리적 거리, 시간적 제약 측면에서 유리하기에 빠른 의사결정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M사는 “중소기업은 시기에 따라서 업무량이나 생산 물량 변동이 매우 큰데 국내에선 이에 대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R사는 “개발조직이 국내 본사에 집중돼 있는 만큼 국내복귀 이후 개발 납기를 단축할 수 있게 됐고, 품질 문제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게 돼 고객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현지 설비처분비용 지원해 줬으면…”

(구미=뉴스1) 정우용 기자 = 17일 경북 구미시 인탑스(주)에서 열린 '산업단지 대개조 선정지역 현장 간담회'를 마친 김용기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철우 경북지사, 장세용 구미시장 등이 스마트팩토리 구축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구미시 제공)2020.6.17/뉴스1
(구미=뉴스1) 정우용 기자 = 17일 경북 구미시 인탑스(주)에서 열린 ‘산업단지 대개조 선정지역 현장 간담회’를 마친 김용기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철우 경북지사, 장세용 구미시장 등이 스마트팩토리 구축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구미시 제공)2020.6.17/뉴스1

기업들은 ‘리쇼어링 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선 효율적이고 과감한 자금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국에서 복귀한 후 국내 투자를 준비 중인 C사는 “복귀시 처분한 생산설비 처분 손실이 상당히 크다”면서 “(복귀시)어느정도 손실을 상쇄할 수 있는 금전지원이나 효율적인 금융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

유턴기업이 국내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산업재편의 기회도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K사 관계자는 “과거 해외 진출시엔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한 해외시장 공략이 주된 이유였다”면서 “하지만 국내 투자는 첨단 고부가가치 사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보조금 지원 등 유턴 혜택 적용기준이 해외공장에서 생산했던 품목으로 제한하고 있는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수도권에 차별적인 유턴지원제도의 개선 요구도 나왔다. R사는 “유턴 지역이 경기도다 보니 애초에 유턴지원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았다”면서 “수도권이라고 차별하지 말고 세제 혜택, 설비 투자 자금 지원 등이 추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R사는 “국내 인건비 부담이 큰 만큼 스마트 팩토리를 통한 원가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스마트팩토리 구축 지원을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확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들어 이달까지 국내 복귀를 선언한 기업수는 총 21개사다. 이들이 밝힌 총 투자계획 규모는 4908억원이다. 아직 연말까지 2달 정도 남았지만 이미 2014년 유턴법 시행(20개사 유턴) 이후 가장 많은 기업이 돌아왔다. 산업부 관계자는 “보통 유턴기업들의 경우 1~2년 가량 복귀 여부를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 발표된 정책들이 복귀를 확정하는데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실적에도 여전히 여전히 확실한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법인세, 상속세 인하 등 과감한 세제 혜택과 각종 규제혁파 등 국내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 순위라는 얘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기업규제3법,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 등 반기업정서를 유발하는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리쇼어링’은 커녕 ‘탈한국 러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재계 한 관계자는 “리쇼어링 정책의 경쟁상대는 해외인데, 해외보다 나은 조건을 하나도 안 만들어 놓고 돌아오라고 하면 누가 오겠나”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인들이 국내에서 해외보다 얼마나 메리트를 느끼게 하느냐는 것”이라고 밝혔다.세종=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최석환 기자 neokism@mt.co.kr

금융당국 ‘4세대 실손보험’ 추진

3400만 명 이상이 가입해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고 있는 실손보험이 또 한 차례 수술대에 오른다. 금융당국이 2009년 표준화실손보험, 2017년 착한실손보험을 도입한 데 이어 또다시 실손보험 상품구조를 변경키로 한 것이다. 이른바 ‘4세대 실손보험’을 선보이는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사전 공개한 밑그림에 따르면 이번 4세대 실손보험의 핵심은 보험금을 많이 타는 사람은 그만큼 보험료를 많이 내게끔 하는 차등화다. 한 번 사고가 나면 보험료가 껑충 뛰는 자동차보험처럼 의료쇼핑을 즐기며 보험금을 많이 탔다가는 보험료가 대폭 오르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실손보험 손해율이 치솟자 보험사들이 아예 판매를 중단하는 등 실손보험이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맞자 당국이 내놓은 해법인데, 이번 개편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 많이 쓰면 많이 내는 식으로 또 바뀌는 실손보험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 4세대 실손보험 상품 개편방안을 내놓는다는 계획 아래 현재 손보업계, 보험연구원 등과 상품구조 개편을 위한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4세대 실손보험의 대략적인 틀은 지난달 27일 열린 실손보험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 공개됐다. 이날 보험연구원은 △보험료 매년 할증 혹은 할인 △자기부담금 상향조정 및 급여·비급여 보장 구분 △재가입주기를 현행 15년에서 5년으로 단축 등을 제안했다.

현재 실손보험은 자주 병원에 들러 적극적으로 보험금을 타내는 가입자나, 돈만 내고 묵혀두는 가입자나 보험료에 차이가 없다. 보험에 신규가입하거나 갱신할 때 성별, 연령별, 상해등급별(직업위험별 3개 등급) 정도의 변수만 반영해 보험료를 산출할 뿐 개인별 이용률이 보험료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기왕이면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심리로 불필요하게 병원을 자주 찾아 진료를 받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가입자가 적지 않다. 병원들도 실손보험 가입자들을 겨냥해 “비타민 주사를 맞으라”, “백내장 수술도 실손보험으로 가능하다”며 유혹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등장한 아이디어가 보험료 할증 또는 할인이다. 보험금을 과도하게 타내는 이들에게 할증으로 보험료를 확 높이면 과잉 진료를 막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신 다수의 선량한 가입자들에게는 보험료를 일부 깎아주자는 구상이다. 실제로 보험연구원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할증 단계를 5구간으로 나누면 보험금을 많이 탄 가입자 상위 0.4%의 보험료가 최대 4배까지 오르는 등 전체 가입자의 2%만 보험료가 올랐다. 반면 보험금을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71.5%는 보험료가 낮아졌고, 병원을 가긴 가지만 빈도수가 적은 26.5%는 보험료가 그대로였다. 이를 9구간으로 나누면 전체 가입자의 17.1%가 보험료가 할증된다.

보험연구원은 이 밖에도 보장 구조를 필수적 치료 성격의 ‘급여’와 선택적 의료성격의 ‘비급여’로 구분해 운영할 것도 제안했다. 급여는 주계약으로, 비급여는 특약으로 분리해 보험료를 각각 산출하고 보험료 차등제는 비급여에만 적용하자는 것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착한실손보험으로 개편하면서 비급여 중에서 과잉진료가 많았던 도수치료, 주사료, 자기공명영상진단 등 3개 항목을 특약으로 빼냈지만, 여전히 나머지 비급여는 기본형에 포함돼 있다”며 “백내장 수술, 비타민 주사제 등 일부는 기본형에 묶여 있다 보니 보험료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10∼20%인 자기부담률을 급여의 경우 20%까지, 비급여의 경우 30%까지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나왔다.

○ 실손보험 시장 어떻기에

실손보험 제도개선 필요성에는 업계나 전문가들이나 모두 공감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나머지 영역, 즉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를 보장하는 실손보험이 필수 보험으로 애용돼 왔지만 보험사들이 높은 손해율에 시달리며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맞았기 때문.

실손보험은 보험사에 매년 적자를 안겨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올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병원 이용을 자제했음에도 손해율이 131.7%다. 보험 가입자로부터 보험료 100원을 받으면 131.7원이 보험금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전체 손실규모는 1조4000억 원이다. 2009년 10월 표준화실손보험, 2017년 4월 착한실손보험 등 상품구조를 바꿔봤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착한실손보험의 손해율도 2017년 4월 출시 이후 빠른 속도로 상승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100%를 넘어선 상태다.

누적된 적자는 점차 소비자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 우선 실손보험 판매를 포기하는 보험사가 생겨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DB생명. 라이나생명. 오렌지라이프 등 11개 보험사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가입연령 한도를 낮추는 곳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생명은 실손보험 가입연령 상한선을 70세에서 60세로 낮췄다. 5월에는 한화생명이 65세에서 49세로, 동양생명은 60세에서 50세로 내렸다. 롯데손해보험은 21세 이상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방문 진단검사’를 거친 뒤 가입할 수 있도록 절차를 까다롭게 변경했다. 보험 가입을 위해 혈압을 재고, 피를 뽑고, 소변 검사도 해야 한다. 가입연령을 높이고, 절차는 번거롭게 만들어 신규 가입자를 최대한 덜 받으려는 계산이다. 보험사들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데 어찌하겠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가입자 간의 형평성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소수의 과도한 보험금 청구 때문에 선량한 대다수의 가입자까지 덩달아 보험료 인상부담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입원’의 경우 2018년 기준 보험금을 전혀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는 전체의 90.5%에 이른다. ‘외래 진료’ 역시 무청구자가 전체의 69%였다.

○ 이번에 개편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다면 4세대 실손보험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금융위는 4세대 실손보험의 보험료 인하폭이 평균적으로 ‘표준화 실손보험’(2009년 10월∼2017년 3월 판매) 대비 약 40∼50%, ‘착한실손보험’(2017년 4월 이후 판매) 대비 10%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 가입자의 환승도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존 상품의 메리트가 분명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병원 이용이 많지 않은 가입자의 경우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 큰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갈아타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4세대 실손보험을 향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필요한 조치이긴 하지만, 지속가능한 실손보험 체계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평가다. 매년 실손보험이 적자를 보는 근본 원인은 ‘기존 가입자’인데 4세대 실손보험은 내년 출시 후 새로 가입되는 신규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舊)실손보험(2009년 10월 이전 판매)과 표준화실손보험 계약비중이 전체의 80%에 달하는 상황에서 기존 상품을 손대지 않고, 4세대 실손보험을 내놓아봤자 적자 구조 개선에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존 가입자들의 갈아타기도 한정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과거에 가입해 놓은 실손보험이 자기부담금 등에서 훨씬 좋은 상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앞서 착한실손보험이 출시됐을 당시에도 갈아타기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보험업계는 적자 구조의 실손보험 체계를 바꾸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험료 인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혹여 4세대 실손보험 출시가 기존 상품의 보험료 인상을 막는 구실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매년 초 보험사는 실손보험료 인상수준을 두고 금융당국과 실랑이를 벌여오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4세대 실손보험은 보험료 인상을 못하는 보험사에 선심성으로 내놓는 대책에 불과하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4세대 실손보험의 차등제 자체에 대한 불만과 우려도 존재한다. 뜻하지 않게 병원을 많이 찾게 된 가입자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보험료 할증폭탄까지 맞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당국은 가입자의 의료접근성을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도록 불가피한 의료이용자는 보험료 차등제 적용에서 제외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기준과 범위는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4세대 실손보험이 나오더라도 추가적인 조치가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로 데이터를 축적해 과잉진료를 일삼는 의료기관을 걸러내고, 실손보험을 중심으로 한 보험사기에도 강력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보험사기 근절을 주제로 한 간담회에서 이성림 성균관대 교수는 “병원에 가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실손보험 가입 여부”라며 “전 국민을 보험사기에 가담하게 한 현재의 왜곡된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의료쇼핑’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해법은 숙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장윤정 yunjng@donga.com·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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